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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맡기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직접 하시면 쉽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실 수 있으실텐데, 왜 힘들고 답답하게 그 일을 부족한 우리들에게 맡기셔서 우리가 스트레스 받게 하고 힘들어서 지치게 만드실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읽고 있는 Philip Yancey가 지은 Church: Why Bother?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 글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씨에스 루이스는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위임할 수 있는 일들을 결코 당신이 나서서 하지 않는 듯하다. 그분은 당신이 눈 한 번 깜빡여 완벽하게 하실 수 있는 일을, 느리더라도 실수하며 그르치더라도 우리에게 하라고 말씀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이 오늘날 교회, 즉 우리들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일 임무를 교회에 위임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임하신 일들입니다.


교회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만 추구하지 말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잊고 우리가 세우고 싶은 교회를 만들려고 하면, 외형적으로 보기에 좋은 교회가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날 교인들을 보면, 일평생 단 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일평생 단 한 사람이라도 나로 인해 예수 믿게 된 사람도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에 걸음을 한 걸음 내디뎌야 합니다. 중간에 넘어지고 무릎이 까여 피 흘리는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이 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와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목적은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고,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대로 살면 행복하고 보람이 있지만, 그 부르심의 목적을 잃어버릴 때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맙니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생후 100일이 되면 스스로 목을 가누게 됩니다. 5~6개월이 되면 스스로 뒤집기를 하고, 8~9개월이 되면 혼자 앉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 10~12개월에는 무언가를 붙잡고 설 수 있고, 15~16개월이 되면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는 일단 서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에 걷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한 걸음 떼는 일들이 있어야 제대로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계속 넘어지는 자녀에게 그만 하라고, 위험하다고 말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오히려 넘어져도 괜찮다고 격려하고 지지하며 일어서라고 독려합니다. 그리고 한 발짝만 떼고 걸어도 박수치고 칭찬하고 열심히 응원하고 인정해 줍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아이가 날아(?) 다닙니다.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신약교회의 원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는 누가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각자의 가정에 모여 가정이 교회당이 되었던 것처럼, 각 가정에 모여 말씀을 통해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한 걸음마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중간에 어려움이 생기고, 힘도 들고, 지치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한 걸음 떼는 일들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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