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조심해야 할 것은 다른 것(Different)을 틀린 것(Wrong)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이것을 오해하면 관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채소를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을 틀렸다고 한다면 문제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도, 자신의 문제로 경험되어질 때 전혀 다른 반응과 태도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얼마전 우리 교회 성도님 중 한 분이 사도신경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장로교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신학교를 가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기에 장로교 전통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모든 예배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예배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를 보면 공의회가 모였을 때, 신 구약 성경도 결정하고, 교리도 정하는 결정을 하면서 모일 때마다 신앙고백을 결정하여 고백하는 정통이 있었습니다. 그 때 결정된 신앙고백 중 가장 핵심 되는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들이 고백하는 사도신경입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의 어느 대목이 고백하기 힘들다는 성도님의 의견을 듣고 잠시 고민했습니다. 성도들의 의견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동료 목회자에게 자문을 구하니, 그 목사님은 목회자의 고유영역인 예배의 권한은 지켜져야 한다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토요일 새벽기도회 때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마지막 때에 목숨을 내걸고 신앙고백을 해야 할 때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신앙고백을 하겠지만, 불편해 하는 그 성도님의 의견을 수용해서 토요일 새벽기도회 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크고 작은 결정과 예배의 순서는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불을 끄고, 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어둡고 캄캄해서 싫어하시는 분도 있고, 그냥 불 환하게 다 켜 놓고 예배 드리면 되지 왜 자꾸 불을 끄고 켜서 정신없게 만드느냐는 의견도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소위 ‘문제’라는 것도 객관적으로 보면 별로 심각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조금만 더 넓은 마음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이 됩니다.
이제 더 깊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적어도 예배 15분 전에는 오셔서 기도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폭포수와 같은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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